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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증

자궁근종이 태아였다니...2002-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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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입적수련생, 후타하시 노리코 저는 46세로 드디어 8개월의 임산부가 되었습니다. 청평의 기적과 은혜가 너무나도 큼으로 많은 이들에게 이 은혜를 전하고 싶어서 펜을 들었습니다. 1996년 5월에 대모님께서 “일본에서 온 여성들은 매월 오세요”라고 하시어서 2,3개월에 한 번은 청평에 다니고 있었습니다. 청평에 처음 온 날부터 왠지 찬송역사 시간이 즐거웠습니다. 그러한 모든 것은 모두 흥진님, 대모님, 훈모님 그리고 여러 직원들의 정성이나 수고 위에 허락되어서 다니고 있었던 상태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이를 갖고 싶어서 “주십시오, 주십시오!”라고 만 기도하고 있었지만, ‘양가의 조상들의 허락이 없으면 낳을 수 없는 것이 아닌가!’라고 생각하게 되어서 친정어머니의 도움을 생각했습니다. 외가의 조상해원을 어머니가 하면 지계가 되니까 꼭 했으면 한다고 신신 당부했습니다. 청평수련이나 조상해원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남편은 여행하는 느낌으로 “인사하러 간다”라고 대답했습니다. 남편은 교구장님으로부터 수련회나 조상해원에 대해서 설명을 듣고, 8월 5,6일의 제 403회 청평수련회에 처음으로 참석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16번 째, 그 다음에 조상의 100일 수련회가 끝났기 때문에 축복식을 하러 가야 되는데, ‘어떻게 할까?’ 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12월에 언니가 21일 입적수련회에 참석하기 위해서 청평에 왔으며 오빠나 조카들도 축복식에 오게 된 것과 모두가 21일 입적수련회에 참석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서야 확실히 제 마음을 결정할 수 있었습니다. 12월 17일 밤 갑자기 남편이 “언니와 함께 21일 수련회에 갔다 오세요. 이때가 아니면 나도 안 가겠어요”라고 말을 꺼냈습니다. 저로서는 입적수련회는 아직 우리들에게는 빠르고 순서도 안되고 했기 때문에 좀더 뒤에 교구장님에게 입적수련회란 어떤 것인가를 설명을 듣고 나서 참석하고 싶었는데, 교구장님의 “다녀오면 어때요?”라는 말씀 한마디로 하여튼 12월 20일부터의 제7차 입적수련회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21일 입적수련회 중에 조상축복식이 있어서 남편을 부르자고 생각했지만 제사 수련회에 참석한 20일 밤, 시골에 계시는 시어머니가 갑자기 쓰러지셨다고 다음 날 연락이 왔습니다. 남편은 곧바로 시어머니를 마중 나가 병원으로 모시고 갔기 때문에 12월 23일, 24일은 시어머니 혼자 남겨놓고 오라고 할 수 없어서 저만 조상축복식에 참가를 했습니다. 제가 청평에 온 날에 쓰러지신 시어머니 때문이기도 하고, 남편이나, 가족들에 대해서 제 이기심으로 휘둘러 버린 것이나, 여러 가지 자신이 저지른 죄와 그 죄를 깨닫지 못하고 있었던 것 등 회개해야 되는 것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21일 입적수련회가 끝날 때쯤인 1월 7일 제 430회에 수련회 때 갑자기 대모님께서 “아이가 없는 가정이 많이 있어서 불쌍하니까 사위기대를 가질 수 있게 해 줄 테니까……”라고 말씀하시면서 지금까지 서울에 있는 병원의 산부인과에 공부를 하러 파견해 주었던 천사들을 특별히 불러 주셔서 “이번만 특별히 배만을 안수하세요”라고 불임자를 위한 안수의 시간을 주셨습니다. 제 몸은 오랫동안 야근 등으로 혹사해 왔었습니다. 자궁근종이 있어서 생리통도 심했고, 출혈도 많아 하복부에 자궁이 부풀 정도였습니다. 8월에는 한번 유산해 버리고 그로부터 생리도 부진해 지고 매일 머리카락이 모조리 빠지는 상태가 되어 위기감을 느끼게 되어 인삼으로 시작해서 건강식품, 바르는 약 등 좋다고 하는 것을 여러 가지로 시험해 보았습니다. 11월에 부종도 나오고, 생리도 멈추고, 임신 테스트는 음성 이었기 때문에 ‘드디어 그 나이가 다가왔구나! 자궁근종도 크고, 아이를 낳을 수 없는 채 여자로서의 삶을 졸업해 버리는 것이 아닌가!’하는 걱정을 하였습니다. 남편은 “양자는 생각할 수 없고, 돈도 없고, 이미 둘 다 나이도 많으니까 아이는 없어도 좋다”라고는 말해 주었지만, ‘사위기대도 이루지 못한 채 죽을 수밖에 없는가!’ 를 생각하면서, 21일 입적수련회에 참석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특별히 안수할 때는 자궁근종만을 생각하고, 서혜림프선 부근을 집중해서 안수했던 것입니다. 지금가지 하복부에 부풀고 있었던 것이 자궁의 바깥부근까지 올라서 부풀게 되었고 자궁근종이 커져서 이동해 왔다고 느꼈습니다. 드디어 자궁을 몽땅 제거해야 할 때가 다가왔다고 각오하고 2월에 할머니 제사 주기에 일본에 돌아갔습니다.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곧바로 정밀검사를 하고 수술도 필요하다면 받으려고 생각하고 병원이 갔는데, “임신이 되어 있는데요?”라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이미 5개월입니다.”라는 말을 듣고 또 깜짝 놀랐습니다. 자궁근종이 태아로 변한 기적을 보았습니다. 만약 그때, 남편이 21일 입적수련회에 가라고 말을 꺼내지 않았으면, 이 아이는 전과 같이 유산할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제 430회 특별 안수가 없었으면, 자궁근종은 아이의 머리 정도 커져서 있었을 것이고, 수술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조상들이 협조해 주신 덕분에 그때 참석할 수 있었던 것과 3,4개월의 중요한 시기에 영적으로도 지켜주신 것에 무엇보다도 감사 드립니다. 주위에 식구들로부터 “어째서 몰랐나?” “바보 같은 엄마”라는 말을 들으면서도 기쁨으로 보내고 있습니다. 태어나면 반드시 청평에 데리고 가겠습니다. 남편 쪽 조상축복식도 빨리 하고 싶습니다. 흥진님, 대모님, 훈모님 정말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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