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72차 청평특별수련 개회식 말씀 '가정적인 사위기대 완성' > 비디오

본문 바로가기

HJ천보미디어

제1272차 청평특별수련 개회식 말씀 '가정적인 사위기대 완성'2015-05-25

본문


제1272차 청평특별수련 개회식 말씀 '가정적인 사위기대 완성’
이기성 원장
2015년 5월 22일


(말씀 전문)

1272차 우리 1박2일 수련 오신 여러분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아주 날씨도 좋고 그래서 1박 2일 동안 큰 은혜가 있을 줄로 압니다.

우리가 세상 사람에게 '왜 삽니까' 이렇게 물어보면 참 대답이 여러 가지입니다. 돈을 벌기 위해서, 또 출세하기 위해서 또 열심히 즐기기 위해서, 또 어떤 사람은 죽지 못 해서 삽니다. 그런 사람도 있어요. 또 어떤 사람은 원수를 갚기 위해서 삽니다. 그런 사람은 대단히 위험한 사람이죠? 또 어떤 사람은 속죄를 하기 위해 사는 사람도 있고 또 어떤 사람은 남은 생애 봉사하며 살겠다고 목표를 정하고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에게 왜 사느냐고 물으면 모두가 한 목소리로 대답할 것입니다. 그게 뭐냐 하면, 하나님의 뜻을 위해서 삽니다. 그렇죠? 사실은 이러한 인생의 목적을 안다고 하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릅니다. 여러분들은 인생의 행로를 알고 있습니다. 어머니 복중에서 10개월 정도 보내고 또 지상에서 오래 살면 100년, 또 살다가 때가 되면 영원한 세계를 향해서 가는구나 이 인생의 행로를 안다고 하는 것도 얼마나 중요한지 몰라요. 대게 ‘아, 살다가 죽는구나’ 이건 알아도 죽은 다음에 가는 세계에 대해서 알지 못하니까 그저 인생을 함부로 살아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인생의 행로를 알고 또 살면서 무엇을 해야 되는지 하나님의 창조목적을 알고 또 날마다 기억하면서 살아간다고 하는 것이 얼마나 복된 것인지 모릅니다. 그리고 그곳을 나만 알고 있으니까 아깝다. 내 가족에게, 이웃에게, 종족에게도 이 뜻을 알도록 해야 되겠다. 이런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여러분들을 보면 정말 하늘이 소중하게 생각하고 또 귀하게 생각할 줄로 믿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거기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고 이미 영계에 간 영인들까지도 해원해줘야 되겠다. 축복시켜야 되겠다. 영원한 안식처를 마련해서 평안을 누릴 수 있도록 해줘야겠다. 그런 마음까지 먹으니까 그 해원 되는 영인들, 또 축복받는 영인들이 얼마나 고마워하겠는가 이번에 교육을 받으시면서 그 영인들이 전해오는 고마운 마음. 이것도 여러분이 느낀다면 이 세상 사람하고 다른, 아주 차원 높은 그런 여러분들이 되리라고 믿습니다. 조상 축복을 하고, 해원을 하고 그랬는데 영인들로부터 조상들로부터 고마워하는 느낌을 한 번도 느끼지 못하고 그냥 하라니까 한다. 이런 것보다 할 때마다 그 고마운 느낌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 된다면 아마 더 행복한 마음을 가질 수 있으리라고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여러분이 먼저 이뤄나가는 사람이 돼야 됩니다. 하늘부모님은 먼저 이뤄나가는 사람을 본보기로 삼으십니다. 그래서 사탄 굴복노정을 맨 먼저 본보인 야곱을 본보기로 삼으시고 모세, 예수 본보기로 삼으시잖아요. 그래서 종족 메시아가 된다는 것은 종족 앞에 본을 보일 수 있는, 본보기가 되는 그런 사람이 종족 메시아가 되는 겁니다. 그런데 생각하는 것이나 인품으로 보나 인격으로 보나 '세상에 저런 사람이 어디 있나'그런 사람은 아무리 종족 메시아 한다고 뛰어다녀도 종족 메시아의 역할을 할 수가 없어요. 또 국가 메시아라고 하는 것은 국가 앞에 본보기 노정을 보이는 사람이다. 이렇게 볼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천일국의 국민으로서 온천 하의 모든 인류를 천일국의 국민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가 하나님의 삼대 축복을 본을 보이는 그런 모습이 되어야 됩니다.

그래서 오늘은 제2축복을 중심하고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제2축복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조건이 있다고 그랬습니다. 그게 뭐냐, 아담과 해와가 하나님의 이성성상의 실체대상으로 분립된 개성진리체를 완성해야 된다. 그리고 부부가 되고 합성 일체화해서 아들을 낳고 딸을 낳아서 사위기대를 이루면 이것이 바로 제2축복의 완성이다. 그랬습니다. 이걸 여러분이 항상 마음에 담아야 됩니다. 그런데 늘 아담해와만 생각하니까 자기한테 잘 안 오는 것 같아요. 그래서 좀 더 가까이 말한다면 남편과 아내가, 또 내가 남편이라면 나와 내 아내가 하나님의 이성성상의 실체대상으로 개성진리체를 완성하고 그리고 부부가 되고 합성일체화해서 아들 낳고 딸 낳고 해야 된다. 그래야 사위기대를 완성할 수 있게 된다. 이걸 우리가 늘 마음속에 명심을 해야 됩니다. 이런 가정이 되면 하나님이 운행하는 가정이 된다 그랬어요. 하나님이 운행하는 가정이 되면 하나님의 속성이 나타납니다. 하나님이 운행하는 가정이 되면 하나님의 속성이 나타납니다. 그 속성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사랑이다. 참사랑이 나타나서 보이는데 어떻게 보이느냐, 부모의 사랑으로, 부부의 사랑으로, 형제자매의 사랑으로, 자녀의 사랑으로 그렇게 보인다는 것입니다. 그 사랑이 시간을 초월해서 공간을 초월해서 사정을 초월해서 그 사랑이 보이는 가정. 그런 가정이 되면 사위기대를 완성한 가정이지만 그것이 안되면 미완성한 가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또 이런 가정을 중심하고 심정의 인연이 맺어진다 그랬습니다. 우리는 늘 심정세계, 심정문화 이 얘기를 했어요. 그 심정문화의 시작이 어디서부터냐 하면 바로 가정에서부터 시작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가정맹세를 외울 때 사대심정권 그걸 외우지 않습니까? 사대심정은 부모의 심정 부부의 심정 형제자매의 심정 자녀의 심정 그걸 우리는 사대 심정권이라고 말하고 있어요. 심정이라고 하는 것은 사랑하지 않으려야 않을 수 없는 충동 감이라고 그랬습니다. 조건 없는 사랑. 우리 아가씨들은 나중에 신랑을 만날 때 멋있게 생겼느냐, 잘생겼느냐 여기에 관심 둘지 몰라요. 그런데 이 심정의 인연은 그걸 초월합니다. 그래서 자녀의 심정 그러면 자녀가 어머니를 사랑하는데 예쁘다고 사랑하거나 그러지 않잖아요. 남이 볼 때는 정말 못난 엄마인데도 아기는 너무너무 좋아합니다. 그게 바로 뭐냐 하면 조건을 초월한 사정을 초월한 그 인연 그것을 가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그런 가정은 서로 섬긴다는 거죠. 그래서 사대심정권과 삼대 왕권을 이룬 가정 이걸 우리는 강조했습니다. 조부모왕권, 부모왕권, 자녀왕권 그래서 이을 대자가 아니고 큰 대자를 써서 삼대왕권 그런 표현을 했어요. 아버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거룩하다는 게 뭔가. 거룩한 것은 귀와 입을 왕처럼 대할 수 있는 있는 곳이 거룩한 곳이라고 그랬어요. 여러분 가정이 거룩한 가정 그런 가정이 되기를 원하죠? 그러려면 집에 할아버지 할머니가 무슨 말씀을 하면 그 입에서 나오는 말씀을 왕의 말씀이다 생각을 하고 귀담아들으면 거룩한 자녀들이 된다는 것입니다. 또 아이들이 하는 말이라고 "자식이 뭘 안다고 그래?" 이렇게 무시하지 말고 아이들이 하는 이야기도 아주 왕처럼 잘 귀담아들으면 그게 바로 거룩한 가정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정심원에 가서 기도를 열심히 하게 되면 아무리 기도해도 하늘부모님이 귀담아 들어주지 않으면 그건 거룩하다고 할 수 없어요. 그런데 여러분이 기도하는 그 기도를 하늘부모님이 귀담아 들어주시면 그게 바로 거룩한 곳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전이 거룩한 곳이고 정심원이 거룩한 곳이 되는 것입니다. 믿습니까? 여러분도 거룩한 부모가 되려면 자녀들의 말을 잘 귀담아 들어줘야 돼요. 무시하고 "뭘 안다고 그래?"그러면 자녀들이 부모를 거룩하다고 하지 않아요. 또 남편이 거룩한 남편으로 대접받으려면 부인의 말을 왕의 말처럼 잘 들어주고 그럴 때에 우리 남편은 거룩하다 그럴 수가 있지, 뭐라고 말하면 싹 무시해버리고 뭘 안다고 그러냐고 소리 빽 질러서 난 한 번도 내가 말하는 것을 존중 받아보지 못 했다. 그럴 때는 한 많은 여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버님 말씀이 참 의미가 있어요. ‘거룩하다’라는 것 성인 성 이 한문을 그렇게 풀이하셨다는 것이 놀라운 것입니다. 그렇게 살면 참사랑이 있고 심정의 인연이 있고 서로 왕처럼 모시고 살면 그런 가정은 한 몸 같은 가정이 된다. 그래서 원리강론에는 하나님을 중심하고 사위기대를 이룬 가정이나 사회는 개성을 완성한 사람 하나의 모양을 담게 되므로 이것은 하나님을 중심 한 인간의 실체대상이요, 따라서 하나님의 실체대상이 된다. 하나님의 실체대상도 되지만 인간의 실체대상도 된다. 그래서 누구든지 제가 있으면 앞에 계신 분이 나의 실체대상도 된다는 거예요. 하나님의 실체대상뿐 아니라 바로 누구의 실체대상이라고요? 나의 실체대상이다. 그래서 내 몸이자 내 몸이고 내 몸이자 내 몸이다. 이게 바로 한 몸이라고 하는 개념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 고전 12장에 여러분 이 성경을 읽으셨죠?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 눈이 손더러 쓸데없다 못하고 머리가 발더러 쓸데없다 못한다. 한 지체 고통이 전체 고통이요, 한 지체의 영광이 전체의 영광이다. 듣기는 참 좋죠? 그 말이. 또 사실은 그래요. “아가씨 코가 왜 그렇게 예쁘게 생겼습니까?”그러면 코하고 상관없는 것 같은 눈이 좋아서 어쩔 줄 모르고 입도 좋아서 어쩔 줄 모르잖아요. 그 코가 예쁘게 된 원인이 성형수술을 해서 예뻐졌는데도 눈이 질투하지 않습니다. ‘수술했으니까 예쁘지.’ 하고 눈이 질투하는 거 봤어요? 다 좋아한다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런 가정이 되기를 바라시는 겁니다. 그래서 아담가정에서도 그런 가정이 되었으면 복귀섭리는 끝나는 거예요. 하나님이 아벨을 사랑했어요. 칭찬했어요. “참 제물을 내 뜻에 맞게 잘 들였구나.” 그때 가인이 자기가 칭찬받은 것처럼 동생을 사랑하고 기뻐했으면 복귀섭리는 그때 끝나는 겁니다. 알겠습니까? 그런데 분노했어요. 분노. 저놈이 내게 올 사랑을 뺏어간 놈이다. 그래서 때려죽여버렸어요.

오늘날 우리도 ‘타락성을 벗어라, 타락성을 벗어라.’ 그런 말씀을 듣는 것은 타락성을 벗으면 나를 중심 한 복귀섭리가 끝난다는 겁니다. 여러분 일대에 여러분을 중심 한 복귀섭리가 끝났으면 좋겠죠? 우리 식구들 누가 잘 되던지 자기가 잘 된 것처럼 기뻐하고 누구의 고통을 내 고통처럼 슬퍼하면 그게 바로 내 개인을 중심 한 복귀섭리는 끝난 겁니다. 믿습니까? 그런 사람 되기 위해서 열심히 타락성을 벗고 또 벗고 또 벗고 그래서 마침내 그런 사람이 되어야 돼요. 지난 대역사 때 어느 누가 선물을 탔다. 내가 탄 거나 똑같은 마음으로 ‘참부모님 감사합니다. 60점이나 내려주시다니.’ 과거에도 많이 주셨는데 또 60점을 주신 것은 있는 것을 거의 다 내놓으신 거예요. 몽땅 내주신 거예요. 그래서 그런 것을 보고도 ‘아, 내가 받은 사랑이다.’ 그런 훈련이 우리에게는 필요한 것입니다. 이렇게 한 몸으로 느낀다고 하는 것은 또 다른 나, 또 다른 나로 느끼는 거예요. 무엇으로 느끼느냐? 사랑으로, 심정으로. 우리 어머니가 아기를 낳으면 또 다른 나로 느끼죠? 안 느낍니까? 아기가 뱃속에 있을 때는 신경을 통해서 같이 느껴요. 그런데 뱃속에서 밖으로 나오면 완전히 어머니하고 아기하고는 육체는 분리돼 있어요. 그런데 아기가 울면 엄마가 울고, 아기가 괴로워하면 엄마가 괴로워해요. 왜 그러냐? 심정이 연결되어 있고 사랑이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 심정과 사랑으로 다른 사람을 나처럼 느껴야 된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두 가지의 큰 계명을 주었어요. 첫째 계명,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나님을 어느 정도로 사랑하느냐 그러느냐,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라. 그렇게 되면 둘째 계명으로 옮겨가는 겁니다.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 네 이웃이 네 몸처럼 느껴진다는 겁니다. 하나님을 참 사랑하고 나면 이웃이 자기 몸처럼 느껴진다는 겁니다. 그런 예수님은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이유가 뭐냐 그것은 이웃을 자기 몸처럼 또 다른 나로 느끼시기 때문에 그렇다는 거예요. 어느 정도로 또 다른 나로 느끼실까, 예수님이 우물가에 물을 잡수시러 가셨어요. 여인에게 물을 달라고 그랬어요. 네 남편을 불러와라. 남편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뭐라고 말씀하셨냐 하면 “옳도다, 너에게 남편이 다섯이 있고 지금 있는 자도 네 남편이 아니니 네 말이 참되도다.”그랬어요. 그 여인은 깜짝 놀랐어요. “뉘시길래, 나를 이렇게 잘 아는가?”그런 예수님이지만 예수님을 당신 몸처럼 생각하는 사람은 만나지 못 했습니다. 예수님은 외로웠고, 눈물이 났고, 마음 둘 곳이 없다고 그랬어요. 그래서 여우도 굴이 있고 나는 새도 깃들 곳이 있지만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 이렇게 탄식을 하셨어요. 예수님을 또 다른 나로 심정을 통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만들어 놓지 못 했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수많은 기독교인들은 예수님은 죽으러 왔다고 그러잖아요. 그의 피로 나를 구원한다고 그러잖아요.

자, 그런데 이 땅에 참아버님이 오셨습니다. 참부모님이 어떤 분이신가? 바로 이 두 가지의 예수님의 계명을 완성하신 분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 다 느끼시는 분이에요. 다른 사람을 내 감정으로 느끼는 분. 그래서 예수님의 심정을 알아내셨습니다. 십자가의 모든 비밀을 밝혀내셨어요. 그리고 우리 식구들이 오게 되면 식구들의 심정을 부모님은 아셨다는 거예요. 여러분 우리 많은 축복가정 간증 가운데 뭐가 있느냐면, 꿈을 꾸고 왔어요. 축복받을 때. 그런데 놀랍게도 아버님께서 그 꿈을 아실리도 없을 것 같은데 꿈에 본 그 사람하고 짝을 맺어주었다는 이야기. 여러분 그런 이야기 들으신 적 있죠? 저는 꿈을 꾸고 약혼식장에 안 갔는데 제 집사람은 꿈을 꾸고 약혼식장에 왔대요. 그런데 꿈을 꿀 때 맞춰준 사람을 만난 겁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우리 부모님의 생애노정을 보면 그런 일이 많습니다. 우리 강현실 회장님 처음 전도될 때도 소나무 아래에서 ‘아, 이제는 가서 하직 인사를 하자’ 그랬는데 말씀을 듣다 보니까 하직 인사할 분위기가 아니라서 그냥 일어나려고 하니까 “왜 소나무 아래에서 마음먹은 거 얘기 안 합니까?” 그래서 깜짝 놀랐다고 그러잖아요. ‘이분이 어떤 분이신가? 메시아구나.’ 우물가의 여인처럼 그 마음을 먹었어요. 우리 이요한? 목사님도 그분이 누구이신가, 산에 가서 밤을 새워 산길을 걸었다고 했어요. 그리고 특별한 몽시를 받았는데 아버님께서 그 몽시를 알고 이야기를 하시더라 그랬어요. “이 목사, 산에 가서 하얀 할아버지가 뭐라고 하던가?” 그런 타아를 자각을 하셨습니다. 그렇다고 우리 모두가 그런 자리에서 서라는 건 아니에요.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처럼 예수님처럼, 부모님처럼 그런 경지가 아니고 다른 사람의 심정을 체휼할 수 있는 그런 마음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참부모님에 대해서 내가 느끼는 감정처럼 부모님의 심정을 느낄 수 있는 나, 어머님의 심정을 느낄 수 있는 나, 아버님의 심정을 느낄 수 있는 나 그리고 부부로 살면서 부부가 남편이 아내에 대해서 ‘아, 아내의 심정은 이렇구나.’그걸 느낄 수 있는 그런 나. 그게 되면 옆에 있는 사람을 내 몸처럼 사랑해줄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는 것이요 그런데 그게 안되니까 화를 내고, 화를 내면 똑같이 화를 내니까 그럼 어떻게 돼요? 통곡을 하고 ‘아, 너무 힘들다.’ 우울증 걸리고 그리고 심한 사람은 그냥 창문 열고 뛰어내리던지 그런 길을 갑니다. 그래서 심정을 체휼하는 부부가 된다는 거 중요한 거예요. 그 다음에 자식에 대해서 심정을 체휼해줘야 돼요. 얼마나 힘들까 그 심정을 체휼해줘야 돼요. 체휼해주지 않으면 집을 떠납니다. 가출을 해버려요. ‘엄마가 날 몰라줘. 아빠가 날 몰라줘.’ 지금 우리 한국에도 10만 명 이상의 청소년들이 집을 떠나있어요. 왜 집에 안 들어가냐? 집이 감옥 가는 거보다 싫다는 거예요. 왜 그래요? 부모가 자기 마음을 알아주지 못하니까.

우리 한국의 얼마 전에 소동이 벌어졌어요. 열 살 어린아이가 시를 썼어요. 그리고 시집을 냈어요. 제목은 참 좋아요. 솔로 강아지. 그런데 그 시집 안에 문제가 되는 시가 하나 있었어요. 학원 가기 싫은 날. 제목이 학원 가기 싫은 날이에요. 학원 가고 싶지 않을 땐 이렇게 찍고 엄마를 씹어먹어. 삶아먹고 구워 먹어. 눈깔을 파먹어. 이빨을 다 뽑아버려. 머리채를 쥐어뜯어. 살코기로 만들어 떠먹어. 눈물을 흘리면 핥아먹어. 심장은 맨 마지막에 먹어. 가장 고통스럽게. 열 살짜리 아이가 학원 가기 싫은 날의 제목으로 이 시를 썼어요. 그러니까 ‘학원 가라, 학원 가라, 학원 가라’ 그 엄마의 그 학원 가라는 소리가 그렇게 싫다고. 이런 시가 무슨 시냐면 엽기적인 시죠. 열 살짜리 아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거예요. 이 아이가 점점 크면 어떤 생각을 할까요? 나라를 씹어먹을 생각도 할 것이고, 다 죽여버리겠다는 생각도 할 것이고.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어도 문제는 뭐냐 하면 이런 아이의 마음을 부모가 느끼지 못한다는 거예요. 그래서 ‘학원 가라 학원 가라 학원 가라 학원 가라’ 이것만 강조하는 거예요. 우리도 혹시 자녀들을 그렇게 키우는지도 몰라요. 자녀들은 죽고 싶은데 엄마를 원수처럼 생각하는데 그것도 모르고 막 그냥 압력을 넣는 그런 모습이 되는지도 모르죠. 이 아이에게는 자녀의 심정을 못 가르치는 겁니다. 자녀의 심정이 뭐예요? 자녀의 부모에 대한 심정 ‘엄마 사랑해, 엄마 좋아, 엄마, 눈물 흘리면 안 돼.’ 이런 마음을 가져야 할 엄마를 향해서 ‘엄마를 씹어먹어. 삶아먹고, 구워 먹어. 눈깔을 파먹어.’ 이런 표현을 했다고 하는 게 자녀의 심정을 잘못 가르쳤구나.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세상 아이니까 그렇지.’ 그런 생각만 하고 있을지 모르는데 우리 축복가정들도 자녀들을 잘 봐야 됩니다. 이 아이의 심정이 어떤지를 봐야 됩니다. 얼굴만 어떤지 보지 말고. 심정이 어떤지, 얼마나 외로운지, 얼마나 힘든지. 그래서 자녀의 심정을 올바르게 키워줘야 됩니다. 자녀의 심정이 뭐라고요? 자녀의 부모에 대한 심정. 심정이 뭐예요? 사랑하지 않으려야 않을 수 없는 충동감. 자녀가 부모에 대해서 사랑하지 않으려야 않을 수 없는 그 충동감이 우러나오는 그런 심정으로 아이들을 성장시켜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형제의 심정을 길러주고 그 터전 위에 올바른 부부의 심정을 갖고 당신 몸이 내 몸이요, 내 몸이 당신 몸이라 할 수 있는 그런 부부의 심정을 갖고 그런 아이들이 결혼하면 부부의 심정을 가지고 참부모의 심정을 가지고 하나님을 대신해서 심정을 가진 아들과 딸을 낳을 수 있도록 해줘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2축복 완성은 타아로 자각하고 사랑할 때 이루어집니다 타아. 또 다른 나라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가 자녀를 낳는 것도 또 다른 나를 낳는 거예요. 또 다른 나를 낳는 것이다. 또 다른 나를 낳고 나보다 이 또 다른 나를 더 사랑해야 되는 것. 이게 부모의 사랑입니다. 여러분, 자녀가 또 다른 나다. 그건 이해가 쉽죠?
여러분, 전도는 뭐예요? 전도. 어떤 분은 그래요. ‘아이고, 교회에서 전도, 전도 듣기 싫었는데 아니, 청평 오니까 또 전도 그래서 숨이 막힌다’라는 얘기를 하는 사람이 있더라고요. 여러분, 전도라고 하는 것은 믿음의 자녀를 낳는 거죠. 그러니까 전도는 또 다른 나를 만드는 거예요. 제2의 나를 창조하는 것이다. 이게 전도라 그랬어요. 전도 대상자를 얼마나 사랑해야 되느냐? 나보다, 내가 나를 사랑하는 것보다 내가 전도 대상자를 더 사랑해야 된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밥을 굶어가면서 기도해주고 정성 들여주고, 내 육신이 지치고 내가 힘들어도 전도 대상자를 더 사랑하는 조건을 세워야 된다는 거예요. 전도 대상자 그 사람이 자기 인생을 걱정하는 것보다 믿음의 부모는 더 걱정해줘야 돼요. ‘너 그렇게 살면 인생이 어떻게 되는 줄 아냐, 너 잘못됐다.’ ‘아 나는 결혼하지 않을래.’ 이러는 사람이 많잖아요. 우리 요즘에 한국도 결혼 적령의 여성들이 ‘아, 나는 결혼하지 않아.’ 이런 사람이 자꾸 늘어나서 큰 문제가 되고 있어요. 그렇게 인생관을 정한 사람 앞에 그 사람보다도 더 걱정해줘야 돼요. 결혼하지 않고 살게 될 때 하나님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얼마나 불행하고. 이 세상의 행복과 불행이라고 하는 것은 물질로만 평가하지 못하잖아요. 사랑으로 평가하잖아요. 그 사랑은 크게 몇 가지가 있다고 했죠? 네 가지죠? 자녀의 사랑, 형제자매의 사랑, 부부의 사랑, 부모의 사랑 그런데 결혼하지 않으면 부모님 덕분에 형제자매의 사랑은 겪었는지 모르지만 부부의 사랑을 가져보지 못해요. 사랑 중에 제일 큰 사랑인 부부의 사랑을 가져보지 못해요. 부모의 사랑을 가져보지 못해요. 그리고 나중에 할머니 소리도 못 듣고 할아버지 소리도 못 듣고 그렇죠? 큰 엄마 소리도 못 듣고 작은 엄마 소리도 못 듣고 이 사랑으로 볼 때는 아주 바짝 말라비틀어진 불쌍한 신세가 되는 것입니다. 믿습니까? 더 나아가서 전도 대상자 그 사람보다도 그 영혼을 더 걱정해줘야 돼요. ‘너 이렇게 살다가 죽을 때 네 영혼이 불쌍하다, 지옥 가는 게 불쌍하다.’ 그래서 전도는 또 다른 나를 만들고 나보다도 그 사람을 더 사랑한다는 심정을 가지고 퍼부어줄 때 전도가 결실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2축복이라고 하는 것은 ‘사랑의 집을 완성하는 것이다.’ 그랬어요. 우리 예수님 말씀을 지난주에도 한 번 생각해 봤습니다. ‘그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아버지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너희가 내 안에 있으리라.’ 인간은 바로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메시아가 들어와 있을 수 있는 성전이요. 그러니까 인간은 하나님도 들어오시고 내 남편도 들어올 수 있고 내 아내도 들어올 수 있고 내 부모도 들어올 수 있고 내 아들, 딸들도 들어올 수 있는 그런 사랑의 집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버님께서 과거에 한 번 복창시킨 적이 있어요. “부모는 자녀의 집이요.” 부모가 계신 곳은 어디든지 자녀가 들어갈 수 있는 집이라는 거예요. 남편은 아내의 집이요, 그래서 아내가 마음속에 들어올 수 있도록 언제든지 마음의 문을 열고 있어야 된다는 거예요. 아내는 남편의 집이요. 그랬어요. 자녀는 부모의 집이요. 그랬어요. 언제든지 부모가 오시면 편안하게 모실 수 그 집이 돼야 된다. 그래서 교회에서는 언제든지 참부모님이 오시면 주무실 수 있는 이부자리도 있고, 다 준비를 해놓은 교회가 많죠? 왜 그러냐면 우리 집이 부모님의 집이기 때문에. 그래서 준비가 안된 분은 존영이라도 모시고 언제든지 우리는 부모님 모시고 있습니다, 이런 표현을 두는 것입니다. 이렇게 서로가 서로의 집이 되어야 된다. 그런데 이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사람은 집이 없는 사람입니다. 노숙자, 나그네. 나그네가 제일 부러운 게 뭐냐면 해가 넘어가고 어둠이 짙기 시작할 때 초가집에서 웃음소리가 나면서 부부의 웃음소리, 아기들의 웃음소리가 나면 그렇게 부럽다 그러잖아요. 집이 없는 사람. 그 집이라고 하는 것은 물론 초가집이 아니라 사실은 나를 나처럼 사랑해줄 수 있는 그런 사람. 그런 사람이 없는 사람. 집은 있지만 노숙자 같은 그런 사람입니다. 나를 나보다 더 사랑해주는 사람. 내 배고픔을 당신의 배고픔처럼 생각하고 내 아픔을 당신의 아픔처럼 생각하고 내 외로움을, 내 슬픔을 당신의 외로움이요, 슬픔으로 생각하는 사람. 그런 사람이 몇 사람이나 될까요? 오늘 저녁에 생각해 보세요. ‘그런 사람이 몇 사람인가.’ 아마 엄마, 아빠는 내 슬픔, 고통, 외로움, 아픔을 나 이상으로 생각하면서 마음속에 두고자 할지 모릅니다. 그런데 엄마 아빠가 돌아가셨어요. 없어. 이제 나이는 먹고 오십이 넘고 육십이 넘고 칠십이 넘고 어머니 아버지 돌아가셨어요. 그런데 내 외롭고 슬프고 고통스러운 것을 나처럼 생각해주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다. 그때 밀려오는 그 슬픔이 얼마나 클까요?

얼마 전에 MBC 이브닝 뉴스에서 다뤄진 할머니가 있어요. 할머니는 죽은 뒤에 5년 만에 발견되었어요. 옷을 껴입고 껴입었는데 몇 겹을 껴입었냐 하면 아홉 겹을 껴입었어요. 그리고 요를 깔았는데, 이불을 일곱 겹이나 깔았어요. 손에는 장갑을 끼고 죽었어요. 5년 뒤에 발견해 보니까 완전히 미라가 되어버렸어요. 그런데 사람들이 무서운 거예요. 치우러 가는데 소름이 오싹 끼치고 무서운 거예요. 왜 그래요? 만약에 우리가 그런 시체 치우러 가자고 그러면 가기가 쉽지 않을 거예요. 이복동생이 있어 연락을 했어요. “누나가 이렇게 죽었습니다.”, “난 상관없습니다. 아무 상관없습니다.” 오지도 않아. 얼마나 외롭고 쓸쓸하고 무섭고 떨면서 영계를 향해 갔겠어요. 문제는 그런 사람들이 한 둘이 아니에요. 일본에도 제가 일본을 보니까 통계에 매년3만 명이, 3만 명 이상이 그런 고독한 죽음을 맞는다 그랬어요. 우리 한국도 일본을 슬슬 따라가요. 우리 한국도 매년 천 명 이상이 죽은 뒤에 20일 뒤에 발견되고 한 달 뒤에 발견되고 그래서 그런 사람을 처리하는 공무원들이 있어요. 너무너무 무섭고. 더럽고, 벌레가 많고 그래서 보통 사람이 못 치운데요. 이런 영혼들. 그 영혼들이 안식처를 찾지 못하고 또 영계에 가면 어디집 지을 곳이 있나. 찾아 헤매는 거예요. 헤매다가 어디로 들어가요? 재림 부활. 다시 몸을 빌린다는 말입니다. 그런 영들이 몸을 빌려서 지상인들에게 들어온다는 거예요. 그러면 지상인은 그 영인의 외로움, 그 영인의 슬픔 이게 몰려들어오니까 우울증에 걸리기도 하고 통곡도 하고. 어제 뉴스에도 보니까 고속도로를 부인이 운전하면서 달렸어요. 지난 1월에 혼인신고를 했다는 신혼부부에요. 남편이 갓길로 세우라고 그러더래. 세웠어요. 차에서 내렸어요. 내렸는데 고속도로 1차선으로 걸어가는 거예요. 1차선으로. 1차선이 얼마나 빨리 달려요. 110킬로, 120킬로 빨리 달리는 사람은 150킬로도 달리는데 가자마자 팍 치여 죽었어요. 도대체 왜 그런 건지 모른다. 부부싸움도 안 했는데. 전혀 그럴 이유가 없는데. 결국은 이렇게 살다가 죽은 영들이 그 남자 속에 집을 지은 겁니다. 그래서 사람의 몸속에 얼마나 많은 악령들이 있는가. 이걸 여러분들은 전부 교육을 받으셨죠? 그 비참한 영혼들을 그 영보 다도더 불쌍하게 생각하는 분이 누구냐. 그분이 바로 하늘부모님이시오, 천지인참부모님이십니다. 그래서 아버지의 기도를 보게 되면 ‘땅 위에 슬픔이 있다 할진대 슬픈 자를 위로하시는 아버님의 슬픔 이상의 슬픔이 어디 있으며 고통이 있다 할진대 아버지를 배반하고 고통을 당하는 사람을 붙들고 위로하시는 아버지의 고통 이상의 고통이 어디 있사오리까.’ 우리 아버님께서는 그렇게 기도를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의 슬픔보다도 더 큰 슬픔으로 바라보시는 분이 누구냐 하면 하늘부모님이시다, 천지인 참부모님이시다. ‘그들을 구해야 되겠다.’ 이런 마음으로 역사를 시작하신 것이 바로 흥진님과 대모님의 역사인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알고 이 자리에 오셔서 ‘아, 내 몸속에 그런 한 많은 영이 많다. 다 해원해줘야지, 구원해줘야지.’ 이런 마음으로 이 자리에 계신다면 여러분은 보통 놀라운 분이 아니십니다. 정말로 영인들이 고마워할 수밖에 없는 그런 여러분들입니다. 그런 마음을 가진 여러분을 위해서 여러분과 연결된 그런 영들을 해원해주기 위해서 형진 님도, 대모님도, 자녀님들도, 영계에 선편에 서있는 수많은 선령인들이 이 자리에 오셔서 역사하는 것이 바로 청평 역사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해원할 때는 ‘아, 이제 한을 풀고 떠나십시오, 떠나십시오.’ 이런 마음을 가져야 됩니다. 알겠습니까?

그 수많은 한, 한풀고 떠나서 그런데 한참 해원하다 보니까 마음속에 놀라운 기쁨이 샘솟더래요.  이런 형용할 수 없는 기쁨이. 축복을 받을 때 부부가 만나는 기쁨보다 더 큰 기쁨이. 그 놀라운 기쁨이 샘솟으면 바로 그 은혜의 표시가 되는 것입니다. 이런 놀라운 역사를 한자리. 그 자리가 바로 이곳이요, 천주에 오직 한 곳 있는 이곳이라는 사실을 생각할 때 그 가치를 마음에 두고 우리가 수련에 임해야 되겠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제2축복 완성을 위해서는 내 속에 간직된 모든 원한의 영들을 다 정리해서 내가 하나님의 집이 돼야 된다, 부모님의 집이 돼야 된다. 그래서 제1축복 완성 기반 위에서만 이 제2축복이 완성되는 것입니다. 축복을 받았지만 남편 속에 악령이 가득하고 우울증이나 걸려서 앉아있고 그러면 그 가정은 축복가정을 이룰 수가 없어요. 그래서 우리는 끝없는 자기완성의 길로 노력해야 됩니다. 끝없이 자기를 혁신하고 자기완성의 길을 향해서 가야 됩니다. 그리고 제2축복을 완성해서 과연 우리 부부는 하나님의 형상이로다. 반쪽과 반쪽이 만났도다. 그런 부부의 사랑을 가져야만이 영원한 천국에 갈 수 있는 것입니다 천국은 부부가 함께 가는 것이라 그랬어요. 천국은 가정이 함께 가는 것이라 그랬어요. 독신으로는 갈 수 없다 그랬어요. 우리는 그 원리를 다 알고 있기 때문에 이제 정말 남편은 아내를 자기 몸 이상 사랑하고 아내는 남편을 자기 몸 이상 사랑하고 부모는 자식을 자기 몸 이상 사랑하고 자식은 부모를 자기 몸 이상 사랑하는 그 참사랑을 통해서 참생명과 참혈통이 영원히 이어진다는 것을 우리가 마음에 간직을 하고 그 마음을 가져야 되겠지만 자꾸 마음속에서는 그냥 부인을 원수처럼 생각하게 되고 남편을 원수처럼 생각하게 되고 이것은 자기 속에 아직도 그렇게 살던 영이 역사하고 있다는 가르침입니다. 그래서 이번 수련을 다 받고 나서 아내를 보니까 ‘아, 나는 죽어도 좋지만 아내를 살려야 되겠다’던지 나 자신보다도 아내를 더 사랑하는 마음이 생긴다던지, 나 자신보다도 내 아들, 내 딸, 내 손자, 손녀를 더 사랑하는 마음이 생기면 바로 승리자가 되는 것입니다. 교회에 가서는 교회 식구들을 나보다 사랑하는 마음이 우러나서 눈물이 샘솟고, 감동이 샘솟고, 뭐라도 해주고 싶고 이런 마음이 생기면 그 교회가 바로 천국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 1272차 수련에 참여해서 타아. 다른 사람을 타아로 생각할 수 있는 새로운 결심을 가졌다. 이런 놀라운 신앙고백이 나오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감사합니다.